안농 심층 분석
‘unknown’에서 생명체로
이름에는 복잡한 말장난이 숨어 있지 않다. 영어 unknown에서 k를 뺀 형태고, 일본어 アンノーン도 같은 단어를 가타카나로 옮긴 것이다. 디자인도 같은 발상을 따른다. 석판이나 묘비에서 볼 법한 고대 문자의 납작한 몸에, 생물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부분은 눈 하나뿐이다. 크리스탈에서는 포켓몬 도감의 종 설명에서 각 형태에 그 글자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를 연결해 둔다.
이 설정이 특이한 이유는 종을 대표하는 개체가 없기 때문이다. 모든 형태가 번호, 분류, 타입, 능력치를 공유하고 어느 하나도 더 좋은 버전이 아니다. 수집하는 사람은 어떤 글자가 더 강해서가 아니라 도감 등록을 위해 모은다.
지역마다 달라지는 유적
성도지방에서 석판 벽화를 풀어 글자를 해금하는 방식은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따라 한 모델이 됐다. 돌로 된 통로와 글자가 새겨진 벽도 그대로 이어졌다. 3세대에서 추가된 두 가지 문장 부호 형태 이후에는 어떤 후속 작품도 새로운 형태를 더하지 않았다.
한 종이 여러 가지 외형을 갖는 발상은 안농 없이도 이어졌다. 얼루기는 무작위로 점무늬가 정해져 누구도 전부 보지 못할 만큼 많은 조합을 만들지만, 그 무늬가 어디에도 기록되지는 않는다. 비비용은 콘솔의 지역에 따라 무늬가 달라지게 해 도감을 국가 간 교환의 문제로 바꿔 놓았다. 안농은 최초의 시도였고, 동시에 가장 절제된 형태였다. 추가 색도, 배경도 없이 실루엣만 있다.
기술 하나, 두 가지 결과
안농의 처지를 설명하기 가장 좋은 비교 대상은 루브도다. 둘 다 고유 기술 하나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종이다. 스케치가 무엇이든 복사하기 때문에 기술 목록은 게임 전체가 된다. 잠재파워는 아무것도 복사하지 않으니 목록이 그 한 줄에서 끝난다. 같은 제약에서 출발한 두 디자인이 정반대의 결과를 낸 셈이다.
플레이어 입장에서 실질적인 결론은 간단하다. 파티에 넣으면 방해가 된다. HP 48에 위력 60짜리 공격을 가진 안농을 여섯 번째 자리에 넣어도 어떤 배틀도 바뀌지 않는다. 배틀프런티어나 어떤 배틀 시설에 데려가는 건 연승을 내다 버리는 일이다. 안농의 자리는 PC 박스 안, 글자 순서대로 정리된 곳이다. 정확히 그 용도로 설계된 포켓몬이니까.
여럿이 모이면
게임이 주지 않은 역할을 영화가 맡았다. 3번째 극장판인 포켓몬스터 극장판: 결정탑의 제왕 엔테이에서는 수많은 안농이 한 소녀를 둘러싼 현실을 뒤틀고, 존재해서는 안 될 앤테이를 실체화한다. 여기서 안농은 개별 포켓몬이 아니라 집단 현상으로 기능한다. 이 해석이야말로 전투에서 안농을 쓰려는 어떤 시도보다 도감 설명에 잘 들어맞는다. 기호 하나는 아무 뜻도 없지만, 여럿이 줄지어 쓰이면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한다.